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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 J KIM님 수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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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 :마음의힘
  • 작성일 :작성일15.04.09
  • 조회수 :2,352
  • 댓글0건

본문

- 만남
색으로 표현하자면 붉은색의 열감이었습니다.
그것이 당시 제가 기를 느끼는 방법이었는지 아님 실제로 객관적인 경험인지는 아직 초보인 저는 확신할 수
없으나, 우여곡절 끝에 모시게 된 도이원 원장님께서 제 어머니께 다가가셔서 상태를 보시는데, 제가 느낀 바는
그랬습니다.
가슴벅찬 경험이었으며, 희망의 전류가 온몸을 감싸듯 그렇게 시작된 어머님의 수련은 뇌졸증이라는 커다란 장벽을 넘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그 병의 심각성과 고통을 누구나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생각됩니다. 예전에는 뇌졸중(중풍)으로 쓰러져 자리에 누우신 부모님을 봉양하는 자식이 그일을
10년 이상하면 효부상을 주었다 합니다.
저는 어머니께서 갑작스레 쓰러지시기 일주일전에 어머니께서 권유해주신 뇌졸증에 관한 모 의협 기자이며 의사가 하는 티비강의에서 언급된 ‘잠수종과 나비’라는 뇌졸중 때문에 식물인간이 된 사람이 쓴 책을 영화로
만든 것을 보다가 가슴이 막히는 거 같고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괴로움이 너무 무거워 끝까지 영화를 보지도 못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어느 정도나마 감을 잡게 되었던 끔찍하고 완치는 있을 수 없는 어쩌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병 중 가장 고통스럽다 할 수 있는 병으로 쓰러지신 어머니를 지켜보기 시작한지 한달만에-14년 4월 원장님께서 어머니를 방문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당시 어머니께서는 중환자실에서 나오셔서 여전히 사경을 헤메시고 있었고, 대체 어느 곳부터 손을 대어야 할지조차 막막한 상태였으며, 병원측에서 하루에도 몇번씩 하는 씨티와 엑스레이 촬영 그리고 끊임없는 검사등으로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하시는 환자는 하루가 바쁘게 지내고 계셨습니다.
기라는 것에 대한 존재는 조심스럽게 우주의 에너지 정도로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 오래되지 않았던 저였지만 결코 기를 실제로 느끼거나 해서가 아니라, 저 스스로 자연스레 갖고 있는 신이 주신 감추어진 내제능력 정도로 해석하고 있었던 터였습니다.
10년전 기에 대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 당시 기의 느낌이 너무나 약하고 둔하여 바로 이것이다 라고 할 수는 결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뵙는 원장님께로부터 느껴지는 강하게 공간을 태우듯 채워버린 그 무언가에 저는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어머니의 수련은 원장님께서 권하신대로 진아씨디를 구입하는 것부터 진행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진아씨디의 힘을 이해하지도 못 하는 제게 원장님께서는 수련비가 반으로 절감되며, 사용하기 시작하면 씨디가 갖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거라 설명해 주셨습니다.
물론 가격문제도 있고 또한 제가 결정해서 수련을 하게 된 이상 확신할 수 없는 미래와 약속에 의심과 불안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머니께서 원하신 기수련이 힘들게 가능하게 되었으니 더 이상 주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하여 가족들과 마음을 모아 일을 진행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원장님께서 다녀가신 다음날 어머니께서는 악몽에 대한 괴로움과 두려움을 호소하시면서 저를 한치도 곁에서 떨어져 있지 못하게 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어머니의 상태는 시상하부에서 터진 뇌출혈의 영향으로 그 주위에 있는 부분들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어머니의 말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저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서워서 죽을거 갔다며 애원하시는 어머니께서는 제게 꿈 이야기를 들어보라 하셨습니다.
“내가 어제 꿈을 꿨는데, 시커먼 옷을 입은 남자들이 악의 소굴같은 곳으로 나를 끌고가서는 나한테, ‘네가 나가면 이 자리에 올 사람 이름을 대’라며 너무나도 무섭게 다그쳤어.‘ 라고 하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 간혼수와 혼수를 넘나드시던 어머니께선 그곳에서 나오신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으신 터라, 실로 아직 사경을 헤메고 계셨고 재발의 위험 때문에 가슴조리며 지내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자식인 저도 알아보지 못 할 때가 많으셨는데 너무나도 간절히 애원하시듯 꿈을 정확하다 싶을 만큼 여러번 얘기해주시는 어머님의 두려움 정도를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까왔습니다. 그래서 처음 뵌 원장님 이셨지만 의논드리고 싶어서 전화를 드렸더니, 걱정 말라시며 다 잘 처리될 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제게 어머니께서 보신 것은 저승사자였으며 원장님께서 병원에 방문하신 것만으로도 이제 어머님의 목숨은 가져갈 수 없기에 다른 이의 이름을 대라고 한 거란 설명을 해 주셨습니다.
솔직히 믿고 싶으면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없지 않은 대답을 기세계에 이제야 입문하게 된 저에게는 전설의 고향을 티비로 보는 것이 아닌 얘기를 듣는 단 생각이 들어 혼자 웃고 말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기적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또한 원장님께서 가져다 주신 진아씨디는 본분을 다하여 어머니를 보호해 드렸고, 어머니는 침상을 떠나시거나 할때면 무섭다고 빨리 방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제게 재촉하시곤 했습니다. 아마도 당시엔 진아씨디가 기를 가득 채우고 있던 방을 떠나시면 저승사자나 다른 영들의 존재감을 느끼셨던 거 같습니다.
- 설사
어머니께서 그렇게 우선은 목숨을 건지고 나신 후, 겉으로 드러나 있는 큰 문제는 피 설사 였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을 피를 설사와 함께 쏟아내시며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십여년간 간병을 해오신 담당 간병인께서도 어머니처럼 심하게 설사를 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측에선 가능한 방법을 다 동원하다 나중엔 수혈까지 제안을 할 만큼 설사는 목숨마저 앗아버릴 듯 심하게 악화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장님께 부탁을 드리게 되었고, 지금은 환자를 살리는 것을 목표로 수련중이니 우선 토르마린을 적정한 위치에 붙여 설사를 다스려 보자고 하시며, 변화가 있으면 바로 연락을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시고 주신 토르마린을 제가 붙여드린 다음날, 어머니께서는 설사를 멈추셨습니다.
저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원장님께 전해 드렸고, 원장님께서는 바로 토르마린을 떼도록 지시 하셨습니다. 기쁨 반 흥분 반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며 가족들에게 전화와 메시지를 보내던 제 모습이 선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다시금 설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혈변은 멈추었지만 설사는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안타까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어제 있었던 일은 혹여 우연이었나 싶기도 하여, 감출 수 없이 무거운 마음으로 원장님께 말씀드렸고 원장님께선 다시 토르마린을 붙여드리라 하셨습니다.
자, 아마도 지금쯤은 이글을 읽는 분들 몇 분은 나름대로의 예상을 하실거란 생각이 듭니다.
과연 설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구요.
옆에 누가 계신다면 간단히 서로 내기를 하셔도 될 거예요. 그럼, 이제 결과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바로 직빵!!! 어머니께서는 그 다음날 몇 주 동안 멈추지 않았던 설사를 그렇게 멎으셨습니다.
그 후 원장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며칠 열심히 기를 넣어 준비한 토르마린이라 그런 효과를 가질 수 있었던 거라고 해주셨습니다.
- 기적이 가져다 준 희망과 용기 그리고 믿음
한번은 반신반의하는 제 가족들을 위해 원장님께서 수련이 보여줄 수 있는 또 다른 기적을 행해 주셨는데, 그땐 엄마가 수련을 시작하신 지 며칠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어머님과 수련을 함께 해주시고 평소와 다르게 장심혈에도 기를 넣어 주셨습니다. 아버님과 말씀을 나누시기 위해 원장님께서는 이미 자리를 떠나셨는데, 절대로 움직이실 수 없이 심하게 마비가 오신 어머니께서 갑자기 팔과 다리에 감각이 돌아오신 겁니다.
우연히 그걸 발견한 저는 원장님께 달려가 흥분된 모습으로 복도를 한달음에 달려가 감각이 돌아왔다는 말씀을 드렸고, 원장님께서는 저희 가족들이 믿음을 갖게 해주시고 싶어서 임시적인 것이지만 장심혈을 통해 감각을 돌아오도록 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마도 저희들이 많이 위태위태해 보이신 모양입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말씀해 주신대로 돌아온 감각이 임시적인 것이었지만, 지금은 감각도 있으시고 조금씩 움직이기도 하십니다.
- 수련
이렇게 우연처럼 어머님의 환우로 기의 세계를 알게되고 공간장에너지 즉 기를 실상과 경험으로 직접 체험하게 된 저는 어쩌면 자연스럽게 원장님께서 선물로 건네주신 ‘기공사가 말하는 초능력 (김경근 저)’를 제 수련의 근간으로 두고 꾸준히 명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기회가 많지 않아 주로 이른 새벽과 늦은 밤시간을 이용했는데, 수련초에 제가 경험 한 바를 수련기를 통해 소개함은 저처럼 기와 관련된 것으로는 그저 평범한 사람(이건 도이원 원장님께서 제게 하신 말씀입니다.)임에도 원장님의 지도편달을 통해 꾸준함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간단히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희 모두의 인생이 다르게 펼쳐지듯 제 수련도 나름 독특한 면은 있었다고 보아집니다. 우선 저는 수련 자체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비워야 한다는 말씀을 해 주실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져 안면은 굳어졌고 인상이 찡그려졌으며, 원장님의 여러가지 너무나도 심오하신 말씀의 뜻을 이해할 수 없어 고민도 많이했고, 좌선시에는 죄없는 목만 불쌍할 정도로 저어대고 머리를 흔들어대고, 벙어리 냉가슴 앓듯 멍하고 앉았다가는 잠시 쉬어야지 하고 누웠다 아침에 눈을 뜨고는 잤다는 걸 깨닫기도 하고...
제 수련은 이런 날들이 무언가 변화를 가져오는 날보다 많았습니다. 잡념과 걱정을 취미처럼 달고 살았던 제게 마음을 비우고 명상한다는 것은 갑자기 밥은 먹되 물은 절대 같이 먹지 말라는 지키기 어려운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것만큼 어려웠습니다.
사실 이런 저를 처음 뵜을때부터 아시고 도와주신 원장님께마저 ‘왜 내게 이런 수련을 계속하면서 마음을 비우라 하시는가’ 라는 생각에 원망하게 될 정도였으니깐요. 그러다 어느날 도이원에서 일반수련에 참가하고 있었는데 수련중 한 장면이 보이고 나서 하염없이 눈물이 콧물과 동반해 쏟아지는 겁니다. 조용히 수련중인데 흐느끼기까지 하며 눈물이 쏟아지니 난감하기 이를데 없더군요.
그렇게 울고 났더니 수련시간이 끝났고 원장님께서 저처럼 그렇게 일반수련 중 우신 회원분이 또 계셨다며 겉은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그렇게 울면 이해가 안 갈 수 있겠지만, 내면속의 어두움이 수련 중 표출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나마 다른 분이 미리 그런 전례를 보여주셨음에 감사를 하면서, 또 당시 무척 머쓱했던 저를 그렇게 함께 웃으면서 넘길 수 있도록 해 주신 원장님께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제가 본 장면에 대해선, 전생의 일부를 본 것 같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후에도 수련 중에 눈물에다 콧물까지 쏟는 일이 많아 가끔씩은 아예 휴지를 옆에 두고 수련을 하기도 합니다.
- 수련의 목적
제게 수련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중 무엇보다 제게 힘이 되어주어 계속 수련을 하게되는 큰 이유 중 하나를 들자면, 수련을 통해 얻게 되는 깨달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깨달음은 수련을 도구로 한 이생에서의 삶의 목표를 잡는 근간이 되기도 하구요. 한번은 내가 과연 수련을 위한 수련을 하는 것인가 아니면 수련을 도구로 한 목표를 가지고 수련을 하는가를 놓고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이것은 원장님께서 던져주신 화두입니다.
당시 저는 불안과 근심에 온 정성을 쏟고 있던 터라, 원장님께서 진지하게 물으신 그 말씀에 또다시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답이 없는 수련생활을 한탄하게 되었었습니다. 제가 갖고 있던 희미한 목표는 저를 위한 욕망의 도구가 아닐까란 생각도 하게 되었고, 집착과 욕망 저편에 펼쳐져 있는 고귀한 목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고 할까요. 수련을 위한 수련이란 생각에 사로잡히면서 마음이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수련중 하느님이 있다면 여쭈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금 일반수련 중 눈물을 흘리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구요. 수련이 한창이었는데, 복잡하기만 한 마음속으로 저는 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수련을 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인지 알게 해 주십사 바램을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얼마지나지 않아 갑자기 빛줄기들이 강하게 눈앞에 펼쳐짐과 함께 갑자기 제 눈은 바르르 떨리기 시작했고, 눈감은 상태에서 보이는 정도의 투시가 되었습니다.
저는 일반수련 중 투시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제가 그날 본 장면들 즉 그때까지 다른 회원님들의 수련모습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투시를 하면서 보니 제 주위에는 시작때보다 많은분들이 수련을 하고 계셨고, 나름대로의 고충과 어려움들이 수련 모습을 통해 제 눈앞에 보이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만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 없었던 다른 이들의 어려운 수련과정과 그것을 통한 인생의 역경을 엿보면서 다시금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렇게 제 수련의 목표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훗날 원장님께서는 제게 원장님께서 잠시 기를 주심은 저희를 우주와 연결시켜 주는거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때서야 저는 수련중 원장님께서 기를 넣어주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 어머니의 회복은 현대의학에선 기적
어머니께서 입원하신 후, 병문안 오신 대부분의 손님들께선 모두 살아나실 거다, 다 좋아지실거다란 말씀들을
해 주고 가셨습니다. 게다가 중풍으로 쓰러진 가족이 계셨다는 분들도 격려해 주시느라 ‘어머니께서는 다 나을거다’ 라고 말씀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사실 저희 어머니께서는 완치는 어려운 상태십니다. 이것은 양방 그리고 한방 모두 의견을 함께하는 얘기구요. 그렇지만 그뿐만이 아니라, 사실 제 어머니께서는 살아계시는 거 자체가 기적입니다. 이건 대부분의 양방과 한방이 동의하는 내용입니다.
어머니를 오래 지켜보신 당시 계시던 병원의 수간호사님과 어머니 친구분이신 다른 병원 신경외과 수간호사님 모두 제게 살아나신 것도 기적이요, 이렇게 많은 회복을 이뤄내신 것도 기적이라 하셨습니다. 당시 병원의 수간호사께선 본인이 얼마나 많은 환자를 지켜봐 왔는지를 강조하시며 이제 일흔을 바라보시는 어머니의 회복 수준은 20대 남성의 정도라며 이런 게 기적이란 생각이 든다고 하셨습니다.
참고로 재활학과 담당 수간호사님의 말씀을 빌어 적어보면, 남성의 회복수준이 여성보다 높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회복은 더 큰 기적이라 말씀하시는 거 였구요.
그 성별에 따라 회복의 차이가 있는 것에 대한 이유를 또 그 분야에 종사하시는 다른 어떤 여성분께서는 그게 마음의 의지 즉 마음의 힘의 차이 때문인 거 같다고 하시더군요.
감각도 많이 돌아오고 계시고 요즘은 걷기 연습도 하고 계셔서 조만간 도이원으로 직접 방문 수련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원장님께서도 8월중 시도해 보자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작은돌
이번에 적고자 하는 내용은 제게 무척 개인적인, 배우자 외에는 확실히 아는 사람없이 비밀로 지내온 저 자신에 대한 내용입니다. 제가 이 부분을 숨김없이 적어보고자 결심하게 된 것에는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일깨워주시며 제게 아낌없이 주신 원장님께서 가르쳐 주신 나눔이라는 것을 실천해 보기 위해서 입니다. 저는 불안이 심해 우울증약까지 처방받아야 했던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해 보이지만, 함께 사는 가족들만 알 정도의 상태라고 할까요? 심할때는 대인기피증까지 생겨 하루종일 집에 있고 싶어하고 가족들이 애원을 해야 산책이라도 할 수 있었습니다.
작은 것에 고민하고 밤을 새우고, 혼자서 울 수 없을 때는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 친구들 만난다고 집을 나서서 차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다가 울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미안했구요.
그래서 내가 사라져 버리면 어떨까? 이런 부질없는 부모를 두느니 이런 못난 배우자를 챙기느라 고생시키느니 차라리 새로운 삶을 가족들에게 선물하고 나는 생을 마치면 어떨까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로 힘들었던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 마음으로 가족을 대하다보니, 그런 미안함과 불안함이 어쩔때는 분노로 표출되기도 했고, 거기서 오는 자괴감에 더욱 괴로웠고. 날 미워하면 내가 세상을 떠나도 날 그리워하는 마음이 덜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기도 하고. 그러다가 조금씩 나아지는 때가 있기도 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정으로 스스로를 아끼지 않았기에 그저 덮어버리듯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저였는데, 저 스스로도 느낄 만큼의 변화가 수련생활이 하루하루를 더해가면서 생기기 시작한 겁니다. 여기서는 두 가지만 예로 적어보려 합니다.
어머니의 질병 특성상 보호자로써의 역할은 생각했던 것보다 장기전이 되었고, 저는 절차를 통해 한국에 더 체류하기 위하여 이민국에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담당자가 중간에 점심시간이라며 바뀌더니 더 준비해 와야 한다는 서류를 가지고 오자 제가 타국국적을 가진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여권으로 한국에 입출국 한 적이 있다며 사법과에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무슨 얘긴지 이해도 되지 않았지만 점심도 거르고 한시간을 기다려서 사법과 직원에게서 설명을 듣고나니, 오래전에 제가 국적을 바꾼 후 한달이 되지않아 한국여권으로 그런 불법행위를 했다는 거 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얘기를 들으며 저는 그다지 당황하지도, 또한 걱정하고
불안해하지도 않으며 태연하게 기다리고 설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후 저는 제 기억과는 다른 얘길하는 직원에게 입장을 밝혔지만, 직원은 아마도 그럼 실수를 한 모양이라며 고액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고 얘길 했습니다. 더군다나 입출국시 두 번 다 한국여권을 사용했으므로 최대치의 벌금 즉 몇천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제가 지불해야 한다고 얘길 했습니다. 그때 제가 강하게 그것에 대해서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그렇게 큰벌금을 낼 수 없다는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직원의 얘길 듣고 있었는데, 직원이 갑자기 ‘그런데 벌금을 제게 물릴 수가 없다’고 하는 겁니다. 기간이 너무 오래되 공소시효기간이 지났다라고 설명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겐 반가운 그 이야기를 듣고 한순간 안도하는데, 다시금 직원이 ‘그래서 벌금을 물릴 수는 없으나 입건은 해야한다’고 얘길 하는겁니다.
입건이란 얘길 들었을 때는 사실 화가 났습니다. 결코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아무말도 않고 직원을 쳐다보며, ‘벌금도 안 물게 되었는데, 입건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너무 억울하다’ 라고 생각하다가, 의념을 해봐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고 마음을 다해 입건이 무산되길 바라는 마음에 집중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던 직원이 갑자기 부드러워진 말투로, 당시 비행경로를 물어왔습니다. 저는 그런 비행경로로 다른 나라를 여행한 적이 이제껏 한번도 없다라고 대답을 했고, 직원은 다시 저와 관련된 기록을 자세히 쳐다봤습니다. 그러더니 큰소리고 “동명이인이네”라고 외치며, “선생님께선 아무 잘못도 안하셨네요. 아래층 직원이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모양이예요. 세상에 주민등록번호 앞자리까지 같은 동명이인이 있으시네요. ”
저는 그 직원분께는 “글씨도 그렇게 작은데 다시한번 자세히 확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출입국을 나왔습니다. 저녁때 동생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했더니, 동생이 그런일이 있었는데 전화 한통화 안했냐며 너무 놀랐겠다고...
그리고 자신은 그렇게 별일 아닌냥 일을 처리한 제가 놀랍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화라도 버럭 내주고 오지 그랬냐고 하는데, 그냥 웃으며 넘겼습니다. 아마도 이 일에 관련된 분들 모두 제겐 업보관계가 있엇던 거란 생각이 들어 평상심이 생기었다 그래서 조용히 나왔다는 얘긴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동생 얘길 듣고나서 다시 상황을 되짚어보니, 그제서야 저 자신의 변화를 느끼게 되더군요.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저는 이 일이 있기 전 이미 수련을 시작한 터였고, 원장님께서 그동안 넣어주신 기 그리고 당시 착용하고 있던 기제품들 덕분에 대담하게 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장애로 우울증까지 갖고있던 저로써는,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우연처럼 던져진 ‘도이원 수련과의 인연’이라는 작은돌이 없었다면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을 저는 우스개 얘기로 추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련과 관련하여 다른 제 경험을 나누자면, 기제품이 준 구체적인 도움입니다. 한번은 수련 중 손가락에 쥐워져 있던 기반지의 움직임을 느꼈습니다.
절대로 혼자서 움직일 일이 없는 기제품에서 강하게 기를 느겼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겠지요.
그러더니 저는 가슴에서부터 강한 행복감에 넘쳐 눈물까지 흘러내리는 겁니다.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그런 강한 행복감은 아마도 제가 몇 번 느끼지 못했거나, 처음 느낀 거 같습니다. 무엇이 원인된 것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일을 계기로 제겐 기반지가 저와 그렇게 가깝게 연결지어져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후 부터는 기반지가 더욱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또 한번은, 원장님께서 기감체크를 해주신다며 반지에 기를 넣어 주셨는데, 제 아이가 한번 그렇게 기를 경험하고 바로 좌뇌와 우뇌가 통합이 되었다는 것도 재미난 예로 말씀드리고 싶네요.
- 바램
수련기에 적진 않았어도 수련을 통해 얻은 보배와 같은 경험들과 깨달음은 사실 더 많지만, 그 중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 몇가지를 적어보았습니다.
저는 아직도 초보 수련자인데다 특별히 수련의 진도가 빠른 사람도 아니고, 여전히 좌충우돌하며 원장님께 걱정도 끼쳐드리는 많이 부족한 회원입니다.
그렇지만 인연이 닿는 여러분께서 수련의 길을 걸으시는데 있어 제 글이 혹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으시길 기원하며 저의 진실된 마음을 담아 적어 본 이 글을 마칩니다.


2014년 7월 31일 수련생 M J KIM